2009년 12월 17일
엄마, 가벼워지다.
나는 채경이에게 올인했다.
한 인간의 탄생 이후 성장을 숨죽이며 지켜보며,
숨가쁜 성장의 동선을 따라가느라고
도저히 다른걸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젖먹이 아기에게 엄마가 없는 시간은 최대 2시간 허용될 뿐이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찼고
30분을 떨어져 있어도 보고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도,
목욕을 시키고 하얀 내복을 입힐지, 분홍 실내복을 입힐지,
노란 양말을 신길지 맨발로 둘지와 같은 중요한 결정 사항들을
어떻게 내가 아닌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을 위해주고 싶었고,
나의 빈곤해진 지식의 곳간을 채워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인간다운 식사와 나의 독서를 챙기면 아기가 방치되었고,
아기의 안위와 나의 편의를 챙기다보니 남편이 초라해졌다.
남편을 추스리고 아기를 돌아보면, 물론 나의 향후 진로나 지적 목마름, 자기계발은
저기 잘 보이지도 않는 순번에 서있기 마련이었다.
책을 주문하면 열권에 일곱권은 한장 넘겨보지도 못하고 쌓여 갔고
남편은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하나만 달고 다니기도 했다.
채경이는 태열, 지루성피부염, 알수없는 피부트러블들을 차례로 거치며 더욱더 단단해져갔고
그럭저럭 어찌어찌 아기를 떼어놓고 다시 출근을 한지 벌써 2주가 되었다.
출근 첫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떨리던지.
과연 나와 분리된 아기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알수 없는 불안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아기는 잘 살아있었다.
나없이 도저히 견딜수 없을 것 같던 아기는
잘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주도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이 환경을 통제하고 있는 느낌
휴! 살았다.
이제 나는 비로소 큰 그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채경이와의 이별의 아픔은 매일매일 누릴 수 있는 재회의 기쁨이기도 했다.
어머님의 반찬과 국을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우리 세식구의 건강을 위한것이기도 했고
베이비시터 비용은 어머님의 건강이자 우리 부부의의 정신건강에 대한 댓가이기도 했다.
저녁마다 남편이 씻어야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젖병과 유축기들은 나에 대한 애정이자 의리이기도 했고
유축의 번거로움은 채경이를 위한 나의 최선이자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이제 내가 일을 하느라 늦어도 아기가 잘 살아있다는 걸 아니까
아무 가책없이 안쓰러워하는 마음없이 보고싶은 마음만 상큼하게 안고 퇴근하는
쿨한 엄마가 되었다. 슬슬 자기개발에도 신경이 쓰이고 진로 고민도 하는 직장인으로 돌아오기도 쉬웠다.
이 모든 것이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희생과 정성에 기반한다는 것.
그 사실이. 슬프기도 기쁘기도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 by | 2009/12/17 15:06 | wonderland | 트랙백 | 덧글(0)



